2010년 10월 23일 새벽예배 설교: 의의 병기로 – 롬 12:1-2
의의 병기로
로마서 12장 1-2
로마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눈다면, 1장부터 11장까지가 첫 부분이며, 12장에서 마지막 장까지가 두 번째 부분입니다. 첫 번째 부분은 교리적인 부분이라 부르며, 두번재 부분은 윤리적인 부분입니다.
첫 번째 교리적인 부분의 주제는 죄인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죄사함 받고 의롭다함을 얻게 된다는 것이고, 두번째 윤리적인 부분은 이제 의롭다함을 얻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올바른 삶을 살아야 되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11장과 12장을 연결되는 고리역할인 12장 1절은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이런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롭다함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라는 말이죠.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 우리의 몸을 주께 드려야 합니다.
- 보시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그 후에 일어나는 가장 놀라운 변화 중의 하나는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어 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6장 19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불신자나 성도들에게 자주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크리스천들은 술을 마시면 안됩니까? 혹은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 합니까? 성경 어디에도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까? 물론 그런 말씀은 성경에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 성경에는 없지만 이것들을 해도 좋은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한다면 술 마시기 전에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기도 드릴 수 있는지, 술과 담배, 이런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지 스스로 질문해 보시면 성령께서 확실하게 알려주실 거라 믿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로마서 6장 13절에 "우리의 몸이 의의 병기가 될 수 있고 동시에 불의의 병기가 될 수도 있다" 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부엌에서 아내의 손에 칼이 들려 있으면 얼마나 사랑스럽습니까? 저 칼을 통해서 어던 멋진 요리가 등장할 것인가 하는 기대로 가득차게 되죠. 그러나 똑 같은 부엌의 칼이 강도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을 상상해 보시면 얼마나 끔찍하고 무섭습니까? 같은 도구가 누구의 손에 들려 있는 있는가에 따라서 전혀 다른 기능을 수행 할 수가 있습니다. 내 손이 하나님의 손이 되어 힘이 없고 연약하며 무력해진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는 다정한 손으로 쓰임받고 있습니까? 내 발이 하나님께서 가라는 곳으로 향하여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로 사용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단이 여러분의 몸을 사용하고 있습니까?
누가 우리의 몸을 붙들고 있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몸이 의의 도구로 혹은 불의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의 몸이 의의 도구로 사용 되어 진다면, 오늘 본문1절의 말씀처럼 "우리의 몸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려"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이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시는 영적예배자의 삶인 것입니다.
제가 질문 한가지 드려보겠습니다. "순교가 어려울까요? 아니면 날마다 순종하는 삶이 더 어려울까요?" '죽으면 죽으리라'의 저자 안이숙 사모님께서 일제치하에 있을 때 순교하고 싶어서, 신사참배를 거절하는 것은 물론, 일본으로 건너가 급기야는 일본 국회의사당까지 걸어 들어가 일본 당국의 기독교 탄압을 규탄하는 내용의 유인물을 뿌려 체포된 후 평양 형무소로 압송되고 6년간 옥고를 치루고 815 광복 때 석방되었습니다. 그후 안이숙 사모는 자신을 '실격된 순교자'라 불렀습니다. 그 분께서 자주 하셨던 말씀이 "하나님, 어쩌자고 순교하지 못하게 하시고 날 마다 이 고생을 하게 하십니까?" 라고 말씀하셨답니다.
큰 맘 먹으면 순교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눈 딱 감고 잘 죽으면 역사에 길이 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어려운 것은 날마다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매 시간 매 순간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힘든 일이죠. 너무나 힘들고 우리의 힘으로 충분히 넘어 질 수 있기에, 1절 보시면,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권면하고, 위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 두번째, 이세대를 본 받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따라 살지 마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끌려다니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니 세상을 따라 사는 것이 당연합니다. 저들에게는 그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고, 성공하는 것이고, 행복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살면 망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면 절대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들과 신분이 다르고, 목적이 다르고, 우리의 주인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바울은 지금까지 우리가 세상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살았다면, 본문은 우리에게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2절 보시면, "변화를 받아 분별하면서 살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자로 사는 것과 잘사는 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세대를 따라 살면 부자가 될 수 있지만, 잘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잘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행복하게 사는 것과 만족하게 사는 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세대를 따라 살면, 많이 가져야 행복해 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진 것 없어도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나를 성전 삼아 ,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신 사람들의 따라가야 할 삶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