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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실하신 하나님 말씀: 시41편

Peartree 2012. 12. 22. 23:16

제목: 신실하신 하나님

말씀: 41

시편은 150편으로 되어 있고, 5권으로 구성 되어 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읽은 41편은 다섯권중의 제 1권의 마지막 편입니다. 그러면 시편을 다섯권으로 왜 나누었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답은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에는 아멘이란 말이 총 네번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41, 72, 89, 106, 그러니까. 우리가 기도한 다음에 아멘하고 끝을 맺드시 아멘하고 끝을 맺은 편이 마지막 장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표시를 해두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오늘 읽은 41편은 다윗이 살아온 지난 날들의 삶을 이 시 하편에 압축시켜 놓은 것입니다. 제기 지금까지 다윗을 말씀드리면서, 귀가 따갑도록 말한 것이 무엇입니까? 다윗의 간음과 살인죄, 압살롬과 사울의 암살음모, 심한 병중에도 여전히 대적이 두려 있는 상태를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삶의 대략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다윗이 심하게 정말 심하게 아파서 몸져 누웠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1절에 죽음에서 건져 다라고 기도하며, 2절에도,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다윗의 기도중에 오늘처럼 이렇게 주님께 직접적으로 간청하는 모습은 처음인거 같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고침 받기를 원하는 이유가 자신이 죽는것, 아픈것 고통당하는 것때문인 것은 아닙니다. 5절 보시면, 원수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원수들이 악담을 하고, 저가 어느때 죽을까 기다리고 있고, 저 다윗이 언제 멸망할까 하며 기켜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도 자신이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때에 나의 영광을 위해 기도 할때가 많습니다. 저도 우리 꿈의교회의 부흥을 놓고 기도하다가도, 문득 이런생각이 듭니다. 지금내가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구하는 것인지, 나의 목회 성공을 위한 기도인지 스스로 질문을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 사이에서 정말 지혜로와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이 쓴 잔이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십자가의 모진 고통에 대해서 예수님도 두려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원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기도가 주기도문처럼 하나님의 뜻대로하는 기도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기도 할 때에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두고 거기에 나의 기도를 드려야 주님이 응답하십니다. 하나님 저를 살려주십시요. 그래야 하나님의 이름이 먹칠이 안됩니다. 제가 병상에서 일어나야 저들이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죽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알것입니다. 하나님 저의 가정도 부흥케 되며, 사업도, 교회도 잘되야, 저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기도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배과수원을 하셨는데, 가을이면 배를 수확하면서, 정말 머리만한 큰 배를 보면 저희 아버지는 목사님 같다 드린다고 따로 모았습니다. 당시에 배 한상자에 18KG 이었는데, 배가 9개 들어가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배 하나에 2kg, 4 pound  나가는 것이죠. 그때 그 큰배가 나올 때마다 저희 아버지는 늘 와 이것봐라 하나님이 이렇게 해주셨다저희집에 일하러온 집사님들이 장로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하나님께서 크게 안 해주실수가 없겠네요, 말끔마다 하나님이 해주셨다라고 하니…… 그 당시에 저희집이 하는일 마다 잘되니 동네 사람들이 저 집은 간첩하고 내통한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간첩이 아니고 하나님과 내통한 것입니다. 이 새벽에 하나님께 여러분 기도하시는데, 하나님과 같은 코드를 가지고 기도하십시요. 응답될 것입니다.

또 다윗은 어떤 기도를 드렸나면, 원수를 용서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윗이 중병에 걸리니, 여러 사람들이 문병을 왔겠지요. 9절 보시면, ‘떡을 같이 먹던, 신뢰할 만한, 가까운 친구가 문병을 왔습니다. 이들이 문병을 마치고 돌아가면서 7절에 수근거리며’ 8절에 악한 병이 저에게 들었으니 이제 저가 눕고 다시 일지 못하리라말합니다. 이 정말 친한 다윗의 친구들이 다윗이 보는 앞에서는 같이 마음 아파하고 걱정해주는 것 같았지만, 문지방을 나서자마자 혀를 차면서 다시는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할거라 악담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다윗의 대적은 가장 친한 친구들이었습니다. 9절 보시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라고 다윗이 그들의 속셈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발꿈치를 들었다는 표현이 한군데 더 나옵니다. 요한복음 13 18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누구를 말합니까? 가룟유다의 배신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에, 발꿈치를 들었다는 표현은 어떤 불쌍한 당나귀가 있었는데, 그 당나귀를 어떤 주인이 데려다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줍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 당나귀가 주인의 간섭이 싫어져, 주인이 자기의 뒤에 왔을 때 주인을 뒷발로 차서 죽이고 달아날려고 하는 데서 유래된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시에 다윗도 이 친구들에을 자신처럼 잘 대해 주었는데 배신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가룟유다에게 배신을 당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의 마음속은 모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다윗의 이 악인들을 향하여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10절 보시면,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일으키사 나로 저희에게 보복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여기서 보복하다는 단어는 복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답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영어 성경도 Revenge 가 아니고 repay 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사랑많은 다윗의 마음을 시편 35 11-12절 보시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불의한 증인이 일어나서 내가 알지 못하는 일로 내게 힐문하며 내게 선을 악으로 갚아 나의 영혼을 외롭게 하나이 마음이 다윗의 마음입니다. 악은 선으로 갚았던 사람…….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한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압살롬도 사울도 원수가 아니었고 사랑의 대상이었다는 것입니다. 시편 1권을 마치면서 다윗의 이 마음이 클라이 막스 입니다. 이 마음은 주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입니다.

 

오늘 하루도 여러분의 마음이 다윗의 성품을 닮는 하루가 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를 향해 오는 대적을 향하여 악을 선으로 갚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다윗이 정말 견디기 힘든 것은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런 배신을 경험하였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여러분의 가까운 사람이 여러분들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선으로 사랑으로 대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출처] 설교(시41편) : 신실하신 하나님|작성자 stevi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