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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조연의 삶도 훌륭합니다 - 요한복음 1: 35-42

by Peartree 2012. 12. 25.

조연의 삶도 훌륭합니다

요한복음 1: 35-42

 

미국의 영화배우 '제시 하이먼' 을 아십니까? 나이는 32세, 최근에 유명하다는 영화는 거의 다 출연한 엄연한 영화배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이름을 잘 알지 못합니다. 미국 사람들도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Extra 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예전 같으면, 스크린에서 잠깐 있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그의 존재를 전혀 알 길이 없었는데, 요즘은, 쇼셜 네트웍이 발달해서, 어떤 사람이, 이 제시 헤이먼을 "세계 최고의 엑스트라" 라는 별명으로, 유투브에 올려, 소개했습니다. 이 영상을 본 네티즌들의 반응이 대단합니다. '와! 최고의 배우다. 기네스 북에 들어가야 된다. 진짜, 출연하지 않은 영화가 없네' 등등 폭발적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는 유명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많은 영화에 출연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잘 기억하지 못하냐면, 사람들은 항상 주인공에게만 초점을 맞추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은, 주연급 인생을 살고 싶습니까? 아니면 조연급 인생을 살고 싶습니까? 누구나 다가 주연급 인생을 살고 싶어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조연의 인생도, 괜찮은 인생이라는 것을 말씀 드리기 원합니다.

 

모세와 아론과 훌, 이 셋 중에 여러분은 누구를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모세를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주연급이고, 아론과 훌은 조연이었습니다. 그런데요, 아론과 훌이 없이 없었다면, 모세라는 위대한 인물은 절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을 더 잘 알고 있습니까? 바나바를 더 알고 있습니까? 물론 바울을 더 잘 알고 계실 거예요. 사실, 바울이 나타나기 전에는 바나바가 더 유명한 사람이었던 것 아십니까?

그래서 바나바와 바울이 처음 만났을 때도, 성경은 '바나바와 바울' 이라고 소개하며, 바나바의 이름을 먼저 불러주었습니다. 그런데, 바나바가 가만히 보니까, 자기는 조연급이 맞는 거예요. 그리고 바울이 주연급으로 적당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는 뒷전으로 물러나며, 바울을 앞세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바나바의 인생이 바울에 의해서 밀려난, 낙오자 인생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조연으로서 훌륭한 인생을 산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주연보다도 더 아름답게 살았던 예수님의 제자가 나오는데, 그의 이름이 안드레입니다. 오늘 본문 40절을 보시면, 이 안드레는 예수님의 12제자 중에서 가장 먼저, 예수님을 따라간 첫 번째 제자입니다. 최초의 제자였습니다.

회사로 말하면, 설립 멤버입니다. 교회로 말하면, 개척 멤버입니다. 어떤 조직으로 말하면, 왕 고참입니다.

이정도 되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 자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누가 나의 자리라도 넘보는 것 같이 보이면, 가차 없이 쳐 내려고 합니다.

 

한국의 연세중앙교회 목사님이 개척할 때에, 처음에는 가족들과 함께 개척을 했다고 합니다. 그 중에는 윤목사님의 어머니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가 막 성장하려고 하는데, 이 어머니 때문에 성장이 멈추고, 성장이 멈추고 그러는 거예요. 왜냐하면, 처음으로 개척했다는, 자부심과, 주인의식이 너무 강해서, 새롭게 들어오는 교인들이, 교회에 정을 두지 못하고, 떠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매정 할 지 모르지만, 어머니에게 '다른 교회를 다니라' 고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교회를 떠난 다음에, 교회가 성장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어머니도, 개척을 같이 했지만, 일 할 수 있는 새로운 일꾼들이 교회에 들어오게 되면, 조연으로 물러나 있으면, 더 아름다웠을 텐데, 말입니다.

 

그럼, 오늘, 아름다움 조연의 인생을 산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 안드레는, 조연의 삶이 사실 힘든 것인데, 어떻게 조연의 삶을 살았는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첫 번째로, 안드레는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42절을 보시면,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데리고 왔냐면, 그의 친형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리고 온 것입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을 만나자 마자, 형 베드로가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큰 일을 하여야 하는데, 분명 사람들이 필요할 것이다. 그럼, 앞에 나서기 좋아하고, 리더십도 있고, 나이도 좀 있고, 뭐로 보아도, 예수님에게는 우리형, 베드로가 필요할 것이다' 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리고 형 베드로를 예수님에게 데리고 가서, 그를 가장 든든한 수제자로 만들고, 자기는 첫 번째, 제자였지만, 그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뒤로 물러서 있었던 것입니다.

참 괜찮은 사람이죠.

 

예전에 코미디 프로에서 이런 장면을 본적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보았을 거예요. 감독이 영화를 찍는데, 엑스트라가 뒤로 말없이 지나가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 엑스트라가 그냥 지나가지 않고, 카메라 앞에서 머뭇 머뭇, 거리는 거예요. 그래서 NG가납니다. 그래서 감독에게 혼이 나고는, 그 다음 번엔 아주 천천히 지나가는 겁니다. 그럼 NG 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조금이라도 더 카메라에 얼굴을 많이 비췄으면, 해서 그런 것입니다.

 

또 전쟁영화를 영화를 찍는데, 엑스트라가 총에 맞았어요. 그러면, 그냥 쓰러져 죽으면 되는 건데, 이 엑스트라가, 억! 소리만 지르고 쓰러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주인공이 총을 한방 더 쏩니다. 그런데도 억! 소리만 지르고 쓰리지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주인공이 또 총을 계속해서 쏘아댑니다. 그런데도, 아무리 맞아도 쓰러지지 않습니다. 그럼 NG 인 것입니다. 카메라 앞에서 얼굴이 많이 나와, 주연같이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조연이면요, 얼굴이 자주 나오면 안됩니다. 그게 조연인 것입니다. 주연만 자주 나와야 합니다.

 

요한 복음 6:8,9절을 보시면, 빈들에서, 약 3만명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 몰려 오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까, 배고프고 피곤해 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광경을 보고, 안되 보였는지, 빌립에게 말합니다.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게 할 수 있냐?' 고 묻습니다. 그때, 안드레가 보리떡 다섯덩이와 물고기 두마리를, 점심으로 가지고 온 아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옵니다.

 

물론 안드레는, 예수님께서 이 5병2어로, 기적을 이르켜, 3만명을 먹이실 것을 기대하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는, 자기를 드러내기 위한 아주 좋은 찬스였습니다. 그 아이가 들고 있는, 5병2어를, 잠깐 빌려서 예수님께 가지고 올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이것을 찾았습니다'. 라고 할 수 있었겠지만, 안드레는 그 5병2어를 들고 있는, 아이를 예수님께 데려다 놓고는, 자기는 슬그머니 뒷전으로 빠져 버립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12제자 중에, 안드레 만큼, Nice 한 사람이 없는 거 같습니다.

이렇게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양보할 줄 아는 Nice한 꿈의 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필라델피아에 가면 유니버시티 펜실베니아 대학, 약자로 U Pen 이라고 하는 대학이 있습니다. 동부의 가장 좋은 대학 8개를 Ivy League 라고 하는데, 그 중에 한 학교입니다. 그 대학이 몇 백명 안되던 초창기의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는 학생들이 전부 기숙사에 들어가서 공부했는데, 개학이 되면, 기숙사로 보따리를 들고 와, 방을 정하게 됩니다. 방을 정하는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먼저, 온 사람이 좋은 방을 가지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First Come, First Get'

 

그런데 방이 다 같지가 안습니다. 계단 밑에 있는 방도 있고, 화장실 옆에 있는 방도 있고, 시끄러운 문간에 있는 방도 있고 여러가지 방이 있는데, 먼저 온 사람이 언제나 제일 좋은 방. 3층 7호실, 그 방을 차지했습니다. 그 다음 사람 와서 그 다음 방, 그 다음 방 이렇게 얻게 되어 있는데, 어느 날 학생 하나가 가방을 가지고 와서는

총무처장에게 방을 하나 달라고 합니다. 총무처장이 "그래. 어떤 방을 원하는가?" 라고 묻자, 이렇게 말 하는 겁니다.

 

"다른 학생들 다 가지고 남는 방이 있으면 저 하나 주세요."

 

총무처장이, 수년 동안 이 일을 해 왔지만, 이런 학생 처음 만나 본 것입니다. 이 말이 대학 총장의 귀에 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이 학생이 장차 어떻게 되는지, 그 학생의 이름과 사연을, 총장실 벽에, 걸려 있는 총장의 사진 뒤에, 이름과 사연을 적어 놓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몇 십년 후에, 그 학생은 그 대학의 총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여러분, 양보하라고 하니까, 목사의 말을 너무 잘 들어, 아무거나 다 양보하면, 안됩니다. 주일에, 친구가 교회 가지 말고, 좋은데 놀러 가자고 하면, 그런 건 양보하면 안됩니다. 교회 안에서도, 해야 할 일들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면 안됩니다. 특히, 영적으로 혼탁한 이 시대에, 진리가 아닌 것들이, 교회에 들어와 교회를 어지럽히고, 그러면, 그런 것들은 양보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단호하게 앞장서서, 주연배우처럼, 앞으로 나서야 합니다.

 

여기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안드레 같은 양보를 말합니다. 안드레는, 자기 말고도, 베드로가 더 잘 할 수 있을 거 같기에, 그 자리를 주었습니다. 나를 드러내고도 싶었지만, 물고기 들고 있는, 이 아이를 세우는 것이, 더 좋아 보였기에, 뒤로 물러설 줄 아는 양보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꿈의 성도님들이 이렇게, 다른 사람을 세워주는, 나이스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1. 두 번째로, 안드레는 조연의 자리를 기뻐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안드레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가장 먼저 주님을 따른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의 제자 사역 출발점에서의 최초의 제자였습니다. 그렇게 보면, 안드레는 예수님의 가장 사랑 받는 제자가 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그런데 복음서를 보면, 안드레는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40절에도 보시면, 안드레를 소개할 때,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 라고 소개합니다. 요한복음 6:8절에도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 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부르면, 기분 좋아 할 사람, 별로 없습니다.

 

성질도 급하고, 실수도 많은 형을, 예수님께 인도한 사람은 안드레입니다. 안드레는 성품으로 보나, 신앙으로 보나, 형보다는 나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안드레를 부를 때는, '네가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냐!' 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의 대통령의 친 여동생이, 북한 선교를 하는 이윤진 선교사님입니다. 지금 나이가 65세입니다. 오빠가 대통령입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간증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제일 처음 언급하는 것이, "나는 이명박 대통령의 막내 여동생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제발 나를 "이명박 대통령의 동생" 이라고 부르지 말라는 거예요. 저를 '이윤진 선교사' 라고 불러 달라고 부탁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요. 나를 인정해 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무리 오빠가 대통령이라도, 내 이름 앞에, 대통령의 동생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안드레는, 그렇게 불려지는 것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이 존귀하게 되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들고 있는 아이를 예수님에게 인도해 놓고, 예수님께서 그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만으로 만족을 누리는 사람. 이 사람이 바로 안드레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나보다 못했던 사람이 앞서가면 어떻습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기심과 질투심이 생기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왠지 끌어내리고 싶은 충동은 없습니까?

자기보다 능력이 부족한 것 같은 동료가 승진하면, 그 것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습니까? 예수 믿은 지 얼마 안되는 성도가, 믿음이 자라고, 교회생활에 열심으로 충성하고, 몇 년 안되서,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그러면, 은근히 질투심이 생기지는 않습니까?

 

저도 어린 시절, 주일학교 때, 크리스마스 연극을 하면, 늘 주인공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때, 학생부에서 발표회를 하는데, 어떤 역할 인지는 몰라도, 대사도 별로 없는, 역할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내 생애 마지막 연극이었던 것 같은데, 참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엑스트라는, 아무리 잘해도 표가 나지 않습니다. 한번 나가서, 한 두마디 하고 들어오는데, 제 실력을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렇다고 제가 잘했다는 것이 아니라, 조연은 이렇게 아무리 잘 해도 누가 알아주지 않는 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누가 기꺼이 조연을 하고 싶어 하겠습니까?

그러나, 이 조연이 없다면, 베드로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사실, 교회도요. 조연이 많아야, 힘있게 움직입니다. 누가 보지 않는 곳에서, 숨어서 일하는 사람들에 의해 움직이는 기관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조연들을 기억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주님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현재 미국에서 최고의 설교자로 손꼽히는, 찰스 스윈돌 목사님이 설교 중에 성도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 변함없이 찾아와 주었던 인물들을 아는가?

루터에게 신학을 가르쳐준 인물들을 아는가?

무디 목사가 신발가게에서 일할 때, 그에게 전도했던 사람들을 아는가?

죠지 뮬러가 방탕한 삶을 살 때, 그의 변화를 위해 수고했던 사람들을 아는가?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에서 선교할 때, 평생 선교헌금으로 후원했던 사람들을 아는가?'

 

우리는 드러난 사람들만 기억하는 오류를 범하곤 합니다. 이 드러난 유명한 사람들 뒤에 가려진, 더 위대한 조연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안드레는, 비록 쟁쟁한 다른 제자들에 의해 가려져 있었지만, 아마도 제일 성숙한 제자였음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 위대한 조연, 안드레를, 주님은 분명히 최고의 주연으로 기억하실 것입니다.

 

옛말에 "구부러진 나무가 산에 오래 간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곧게 뻗은 나무는 쉽게 사람의 눈에 띄게 되서, 기둥이나 석가래로 쓰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부러진 못생긴 나무는 눈에 잘 보이지 않아서, 보아 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오래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늙어서 푸석 푸석해지면, 땔감으로 사용되겠죠.

이런 인생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자기 사명을 끝까지 완수한, 그 인생을 주님은 최고의 주연급 인생으로 기억 하실 것입니다.

 

비록 안드레는, 주연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조연의 역할을 잘 감당한 멋진 인생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안드레 처럼 끝까지 조연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섬긴다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안드레와 같은 조연들을 통해 이루어져 가고, 세워진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지금 내가 맡은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켜내는 당당한 조연들이 되시는, 귀한 꿈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