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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너는 조심하라 - 신 6:10-15

by Peartree 2012. 12. 25.

성탄에 생각하는 재림

눅 2:1-14

 

며칠 전에 월마트에 갔었을 때, 크리스마스 카드를 둘러 보았습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그런지, 크리스마스 카드만 모아놓은 섹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카드를 뒤적이면서, 참 이상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카드의 그림들이 거의 다가, 산타 할아버지이거나, 누돌프 사슴이거나, 크리스마스 트리, 촛불같은 그림들이었습니다. 그래도 나은 것은, 성경책과 천사의 그림이 있었고, 동방박사들의 그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 그림은 한 장도 없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 한편의 영화를 보더라도, 주인공 없는 영화는 없습니다. 모든 영화에는 주인공이 있게 마련입니다. 주인공이 없으면, 영화가 되질 않습니다. 주인공 없는 영화는 앙꼬 없는 찐빵이요, 잉크없는 만년필이요, 고무줄 없는 파자마 입니다. 그렇게 요즘의 크리스마스는 주인공이 없다는 거예요.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크리스마스 카드 그림은 거의 다가, 마리아가 예수님을 안고 있는 그림이었거나, 아니면, 말 구유에 누워계신 예수님, 그리고 그 앞에 동방박사들이 서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예수님 대신에, 산타 할아버지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주인공 행세를 한다는 거예요. 산타의 생일인지, 예수님의 생일인지 알 수 가 없습니다.

 

여러분 다 아시다시피, 산타는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희망을 깨뜨리는 말일 수 있는데, 어쩔 수가 없습니다. 지난주 Chicago Fox News 에서, Robin Robinson 이라는 여성 Anchor가, 뉴스 시간에,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대하고 있다' 는 뉴스를 전하면서, '아이들은 산타클로스가 실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더 빨리 배워야 한다' 며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산타가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을 그만 둬야 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방송이 나간 직후 방송국으로 항의 전화가 빗발쳤고, 결국 그 다음날 그 앵커는 '자신이 경솔했다' 고 하며 사과 방송을 했습니다.

 

뭐 요까짓, 산타 클로스가 가지고 그러십니까? '하나의 추억이지요.' 하실지 모르지만, 영적으로 보면, 아주 심각한 수준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성탄절이, 하나의 비지니스로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춤하던 경제가, Thanksgiving 과 Christmas 를 지나며,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선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이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하면, 상업화 시킬까? 고민을 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만 상대로 하면, 돈 벌이가 되지 안을꺼 같으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을 상대로 사업을 구상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같이 공감하고 좋아하는, 주인공을 필요로 하게 되었는데, 예수님을 주인공으로 하자니, 세상사람들에게 먹혀 들지 않을 꺼 같으니까, 아이들이건, 어른들이건 모두가 좋아하는 산타가 제격이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크리스마스 캐롤을 많이 부릅니다. 원래 '캐롤' 이라는 뜻은, '기쁨의 찬송' 이란 뜻입니다. 죄와 슬픔으로 잠긴 이 땅에, 구원의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 처녀의 몸을 입고,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을 찬양하며, 기뻐하는 노래가 캐롤입니다. 그래서 캐롤의 주인공도,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캐롤을 들어보시면, 예수님이 주인공인 노래가 몇 개 없습니다. 루돌프 사슴이 주인공이 되고, 실버벨이 주인공이 되고, 산타가 주인공이 되는 노래들 뿐입니다.

 

저는 캐롤중에 제일 마음에 안드는 노래가 있습니다.

"울면 안돼, 울면 안돼, 싼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게는 선물을 안 주신대"

"You better watch out. You better not cry. You better not pout I'm telling you why,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

 

이 캐롤은, 우선 싼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가져온다는 사실입니다. 거기까지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다음 구절을 보시면, 이 싼타가 완전히 하나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싼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누가 착한 애인지 나쁜 애인지," 이 가사에는 싼타 할아버지가, 모든 것을 다 아는, 전지전능한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온 우주는 통털어 전지하고 전능하신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안계신데 말이죠. 마치 싼타가 신이나 되는 것처럼,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그를 기다리는 어린이들 뿐이라는 것입니다.

 

정작 주인공 되신, 예수님은 저 뒷전으로 물러나 계시고, 가짜들이 나와서 판을 치는 이 시대 가운데,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 크리스천들은,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어떤 모습으로 오셨는지는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재림 하실때, 주님을 알아 볼 수 가 있습니다.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아기 예수님으로 초림 하실 때에도,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몰라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앞으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재림 하실 때에도, 주님을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2000년전 성탄절 날에도, 세상은 엄청 분주했습니다. 오늘 본문 7절의 말씀대로, 여관에 빈방이 없을 정도로, 세상은 바쁘게 돌아갔습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도, 세상은 분주하고, 바쁘게 돌아갈 것입니다.

 

세상이 그렇다 할지라도, 그 중에서 주님을 맞이하는 영광에 참여한, 목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의 목자들을 연구하면,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비결이 무엇인지 오늘 본문에서 몇 가지 찾아보며,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 첫째로, 목자들이 주님을 맞이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주님과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2000년전 성탄절에, 목자들은 실제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주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주님을 찾아가기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을 꺼 같으니까, 천사가 가까이에 있는 목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알려 준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 기쁜 소식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너무 멀어지지 말고, 친밀한 교제 가운데, 살아가시는 우리 꿈의 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성경에 주님과 친밀한 사람을 꼽으라면, 당연 다윗왕을 들 수 가 있습니다. 시편 73:28절을 보시면, 다윗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다윗은 복 받는 비결을 정확히 알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복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과 가까이 하려고 평생에 애를 쓴 사람이 다윗왕입니다. 그래서 그는 늘 예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찬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눈치를 살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복과 물질의 복까지, 받아 누린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한 해가 다 저물어 갑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다가오는 2012년에도 우리는 더 많은 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럴려면, 우리 성도님들 모두가, 다윗처럼, 주님과 친밀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친밀한 삶을 살다가, 공중에서 부는 나팔소리를 듣게 되면, 주님을 만나는 것이고, 듣지 못하면, 이땅에 남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세상에 너무 취해서, 정신없이 살며는, 이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없습니다.

한밤중에, 고요한 중에, 양들을 치는 목자들의 귀에 기쁨의 소식이 들리듯이, 고요하게 주님과 가까이 있을 때,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재림의 기쁜소식을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1. 두 번째로, 목자들이 주님을 맞이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회적으로 멸시와 천대를 받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양떼를 지키거나 키우는 사람들은 비천한 부류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도,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중에, 한명을 택하여 이스라엘의 왕을 삼으려고, 그 집에 찾아 갔을 때, 아버지 이새는 다윗만 빼놓고, 7명의 형들을 다 선을 보였습니다. 목동 다윗은, 보여줘 봤자, 왕이 될 재목이 될 것 같지가 않으니까, 제외시켰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그 집안에서, 가장 못나고, 연약한 사람은 다 목동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한번 목동이면, 평생 동안 목동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전직이 목동이었다면, Application 을 써내도, 취직이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적으로 목동하면, '못난 사람' 이라는 선입관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요.

 

하지만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런 목자들을 택하셔서,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는 영광에 참여하게 만드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낮고 천한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이새의 7 아들을 다 선보았는데도, 하나님은, '이 집에 아들이 이것 뿐이냐?' 라고 하시며, 낮고 천한자를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예수 믿는 다고, 손가락 질 해도, 염려 마십시요. 그러면 그럴수록,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에, 좀더 근접하게 다가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11절에도,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악한 말을 할 때, 너희에게 복이 있다' 고 말씀하시면서, '기뻐하고 즐거워 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크다'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성탄절에 이렇게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이, 주님을 보았듯이, 재림때에도, 예수이름 때문에, 핍박을 받았던 사람들이, 주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1. 세번째로, 목자들이 주님을 맞이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충성스러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8절을 보시면, 이 목자들이 얼마나 충성스러웠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이 목자들은, 밤중인데도, 집에서 잠자지 않았습니다. '밖에서' 양을 지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충성스럽게 사명을 감당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하니까, 주님을 만나는 영광스런 순간을 맞이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셨습니까? 이 목자들은, 세상이 알아주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양들을 쳐도, '잘했다' 칭찬 한마디 던지는 사람도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도, 누가 보거나 말거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양을 지키고 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성탄의 주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에이, 오늘 하루만, 집에서 잠이나 실컷 자야지,' 하며 주님이 오시는 그날 밤, 들어가 잔 사람이 있었다면, 분명히 주님을 보지 못했을 거예요.

그래서 성경은 항상 깨어 근신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도, 이와 마찬가지 입니다. 밤중에 도적 같이 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파수꾼처럼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목자들 처럼 말이죠.

 

여러분 이런 생각 해신적 있으실 거예요. '술 한잔 할 때, 주님이 오시면, 어쩌나' 아니면, '한동안, 예배를 드리지 않고 있는데, 주님 오시면, 어쩌나', 이런 생각 안 해보셨습니까?

 

여러분, 믿음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즉 다시 말하면, 지금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아무리 양들을 잘 지켰다 할지라도, 성탄절 그날 밤에, 잠을 잔 목동이 있다면, 주님을 못 만났을 것입니다.

왕년에 아무리, 불같이 믿음 생활 했을 지라도, 지금 타락한 삶을 살고 있으면, 도로묵입니다.

반대로, 과거에는,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예수님을 욕했을지라도, 지금 현재, 예수님 영접하고, 믿음에 굳게 서 있다면,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항상 깨어 있으라' 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시 오실 주님을 만날 준비가 되셨습니까?

초림때에도, 예수님을 만나 사람들은, 목자들 같이, 맡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동방의 박사들이 예수님을 보았는데, 이 사람들은, 주님이 언제 오실지, 부지런히, 연구하며, 별들을 살피며, 기다렸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냥, 세상에 젖어 살다가 주님 만나는 법은 없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한 구절이 한 구절도 없습니다. 모두가, 핍박을 받으며, 사모하며, 깨어 있다가, 만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 윌리라는 9살 소년이 있었습니다. 4학년에 해당되었지만 지적 능력이 다 소 떨어져 2학년에 다니고 있었어요. 그 해 성탄절에 주일학교에서 성극을 하게 되었는데, 윌리가 맡은 역은 여관집 주인역이었고, 대사는 딱 한 문장이었습니다. '안돼요. 방이 없다니까요. 가세요!' 라고 하며, 문을 쾅 닫고 들어가는 아주 간단한 역할이었습니다.

예배당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연극이 시작되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여관문을 두드립니다. 그러자 여관 주인역할인 윌리가 나와 방이 다 찼으니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요셉과 마리아는 간절히 사정을 합니다.

 

"우리는 너무 멀리에서 왔습니다. 아내는 금방 출산할 것 같습니다. 제발 좀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여관 주인으로 분장한 윌리는 말을 잊은 채 마리아를 오래도록 쳐다보았습니다. 무대 뒤 에서 대사를 읽어 주던 선생님은 윌 리가 대사를 까먹은 줄 알고 자꾸 읽어 주었다. 한동안 서 있던 윌리는 선생님이 크게 읽어 주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안돼요. 방이 없다니까요. 가세요!'

 

결국 요셉과 마리아는 슬픈 얼굴로 돌아섭니다.

 

바로 이때였어요. 각본대로 이제 방문을 쾅 ! 닫고 들어가야 할 윌 리가 돌아가는 요셉의 가족을 걱정스러운 듯이 눈물을 흘리며 지켜보다가 갑자기 소리를 지릅니다.

 

"요셉, 마리아! 가지 말아요. 마리아를 데리고 들어와요!"

 

물론 각본에 없는 대사였습니다.

 

"내 안방을 쓰세요. 내 방에 어서 들어 들어오란 말이예요!'

 

물론 연극은 엉망이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그 장면을 지켜보던 많은 교인들은 "내 생애에 있어서 이렇게 감동적인 성탄극은 처음 보았소."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주님을, 모셔들일, 방이 준비 되어 있습니까?

혹시, 아직까지도, 그런 방이 준비 되지 않았다면, 이해가 가기전에, 내 삶속에,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그리고, 시간이 있을 때 마다, 주님과 대화하며, 주님을 예배하며, 찬양할 수 있는, 방 한칸 비워두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