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쓰시는 예수님
요한 계시록 2:1-7
교회 역사에서 ‘편지’ 는 참으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신약성경의 대부분은 편지입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사도행전은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쓴 편지입니다. 로마서는 로마에 흩어져 있는 성도에게, 고린도전후서는 고린도 교회 성도에게, 빌립보서는 빌립보교회에게 쓴 편지입니다. 그리고 요한 계시록은 소아시에 있는 일곱교회에게 쓴 편지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전체가 편지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는 아주 친숙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우리 예수님께서도 편지를 쓰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1절을 보시면,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고 말씀합니다.
사도바울만 편지를 쓴 것이 아니라, 우리 예수님께서도 교회들에게 편지를 쓰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에베소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의 편지에 나타난 주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몇가지 찾아 보며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 첫째로, 예수님은 교회를 너무나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보시면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안다” 고 말씀합니다. 다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고난 당한 것도 알고, 열심으로 전도하며 교회를 섬긴 것도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아십니까? 예수님은 전지 전능하신 분이시라,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그런데 특히, 본문 1절을 보시면, 예수님은 교회 사이를 걷고 계시기 때문에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1절에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분” 이라고 말씀합니다. 또 바로 앞절 (1:20) 을 보시면,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 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주님’ 라는 말은, 교회 사이를 걷고 계시는 주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쉽게 말하면, 교인들 사이로 걸어 다니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교회를 너무나 잘 아실 수 밖에 없죠.
성도들이 지금 어디 앉아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약점도 아시고 장점도 아십니다.
우리의 조급한 성격도 아시고 게으른 성격도 다 아십니다.
예배 시간에 일찍 나오는 것도 아시고 늦게 나오는 것도 다 아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 앞에서 홀이라도 감출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일곱 교회에게 편지할 때 마다 하신 첫 말씀이 “내가 너를 아노라”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네 행위와 네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네가 참고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2:2-3)”. 안다. 안다.
목사는 여러분들의 수고와 인내를 다 알아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러분들의 수고를 모두 다 알아 주십니다.
목사는 여러분들의 어려운 사정을 다 알아 주지 못합니다. 가난한 사정을 다 알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러분들의 가난한 사정 어려운 사정을 다 알아 주시고 억울한 사정도 모두 다 알아 주십니다.
목사는 여러분들의 사업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릅니다. 여러분들이 당히는 고통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 아십니다.
누군가가 나의 모든 사정을 다 알아 주신다는 사실은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내가 너를 아노라.”
더군다나 사랑과 긍휼과 능력이 많으신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형편과 사정을 다 아신다는 사실은 우리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도 아시고 계신다는 것에 대해서 교회는 힘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의 교회들은 다 아시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용기를 얻고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2. 두번째로,예수님은 교회를 칭찬도 하시고 책망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4절을 보시면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교회가 잘 하는 것도 아시고 잘못 하는 것도 다 아시면서 잘한 것은 칭찬하시고 잘못한 것은 책망하시는 분이십니다.
저는 어머니로부터 칭찬도 많이 들었지만 책망도 많이 들었습니다. 칭찬과 책망은 우리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칭찬도 하시고 책망도 하시는 지혜로우신 분입니다.
2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수고와 인내를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4절에는 책망도 하셨습니다.
어떤 책망이었냐면,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다.” 는 책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교회를 너무나 사랑하시고 너무나 아끼시기 때문에 칭찬도 하시고 책망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칭찬도 고맙게 받고 책망도 고맙게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 6:2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성경에서 하나님의 책망을 업신 여기고, 듣기 싫어한 사람들은 다 죽었거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자녀도 마찬가지 입니다. 부모의 책망을 싫어하는 자녀는 잘 되지 않습니다.
성도도 마찬가지 입니다. 목사의 말은 영혼을 사랑해서 하는 말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들어야, 복이 되는 것입니다.
3. 세번째로, 예수님은 회개를 촉구하시는 분이십니다.
본문 5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회개하라.” 고 말씀하시며 회개를 촉구하는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7교회 중 5 교회에게 공통적으로 하신 말씀은 “그러므로 회개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사실 “회개하라” 는 말씀은 예수님이 공생애 처음부터 부활 승천하신 다음에도 계속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4:17).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5).
예수님께서 왜 자기가 그렇게도 사랑하는 교회들을 향해서 회개하라는 말씀을 반복해서 하셨습니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회개 해야 천국에 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두번째로, 회개는 이 땅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윗이 회개할 때 다시 일어나 승리하는 삶을 살고, 결국에는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한편 강도가 죽기 전에 회개 했을 때,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베드로가 회개 했을 때, 다시 일어나 사명을 회복하고,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이 회개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 하지 않는 크리스천은 진짜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회개는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끊어 버리는 것입니다. 앞으로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입니다.
1907년에 한국교회가 회개할 때 이 나라가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회개’ 라는 말이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죄악의 세력에 무참히 짓밟히고 있습니다.
성적 타락이 극도로 문란해서 짐승처럼 되어 가고 있습니다.
돈 사랑이 극도에 달해서 부정부패가 만연되지 않은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돈을 위해서면 엄마와 형도 서슴치 않고 죽이게 되었습니다. (어제 뉴스)
오늘 본문의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을 처음 믿었을 때는, 주님을 위해서면 돈 사랑하는 것도, 자기 사랑하는 것도, 쾌락 사랑하는 것도 얼마든지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그 주님 사랑이 점점 식어지고, 자기 사랑, 돈 사랑, 쾌락 사랑을 위해서 주님 사랑하는 것을 기꺼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 사랑하는 마음 다시 되 찾으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의 이런 마음을 다 아시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책망도 하시고, 회개하라고 촉구도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에베소교회가 혹시 우리교회는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서,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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