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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성전을 헐라 - 요한복음 2:12-22

by Peartree 2012. 12. 25.

성전을 헐라

요한복음 2:12-22

 

지난 시간에는 예수님의 첫 번째 표적인,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 시키는 주님이라면,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인생까지도 변화 시킬 것이라고, 확신하고, 그때부터,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 기적을 행한 후에, 12절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으로 내려 가셨다가, 여러날 계시지 않았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여러날 계시지 않으셨습니까? 13절에 보시면,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기 때문에' 가버나움에 오래 계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것으로 미루어 보아,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 가시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셨던 같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셔서, 어떤 사역을 하셨습니까? 저는 이 예수님의 유월절 사역에 이름을 붙여 봤습니다. '들러 엎으시는 사역' 이라고요.

오늘 본문, 14-16절을 보시면,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을 내어 쫓으시고, 그들의 테이블을 들러 엎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이 몇 년 이었습니까?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학자들은, 3년이 조금 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3년 4개월이거나, 길게는 3년 반정도 일 것이라고 합니다. 이 이론을 뒷 바침하는 가장 큰 증거는, 요한복음에 세번의 유월절이 기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에 첫 번째 유월절이 나오고, 요한복은 6:4절에 두 번째, 유월절이 나오고, 11장 55절에 세 번째 유월절이 나옵니다.

 

다른 복음서를 보시면,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을 내어 쫓으시고, 그들의 테이블을 들러 엎으시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 세번의 유월절 중에, 몇 번째냐면, 세번째, 유월절에 들러 엎으신 것으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러면 결국, 예수님께서는, 이 '성전을 청결케 하신' '들러 엎으신 사역을' 몇 번을 하신 것입니까? 두 번 하신 것입니다. 사실 요한 복음 2장에, 한번 하셨고요, 요한복음 11장에 한번 더 '성전을 들러 엎으셨다' 고 기록했어야 맞는데, 성경 저자가, 똑 같은 사건을 두 번 기록하는 것을 피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이유가 어떤 사역을 하기 위해 올라 가신 것 같습니까?

'성전을 들러 엎으시는 사역' 을 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것입니다.

 

그러면, 어째서,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마다, 올라가서, '성전을 청결케 하셔야만' 하셨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첫째로,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케 하신 이유는, 16절에, 사람들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었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비즈니스 용도로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왜 이렇게, 성전에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그 배경을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당시에는, 유월절이면, 전국 각지에서, 또는 다른 나라에 살던 사람들까지, 예루살렘으로 와서, 유월절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유월절이 명절이었습니다.

 

지금도, 무슬림들은, 그들이 성지를,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 라고 합니다. 그래서, 해마다, 이슬람 달력으로 12월 8-10까지 3일간, 메카를 방문하는데, 300만명 이상 다녀가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크리스찬들이 가는 성지 순례와는 다른 것입니다. 이들이 메카에 가는 것은, 의무입니다. 꼭 가야만 하는 행사입니다.

 

이처럼, 예수님 당시에도, 유월절이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명절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지금처럼 교통이 좋으면 참 좋겠는데, 모든 것이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유월절에 드릴, 소나 양이나, 비둘기 이런 것들을, 끌고 가는 것은 여간 힘들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편리하게, 돈을 가져갔습니다. 그래서 성전 앞에서 그 돈으로 짐승을 구입해서, 성전 안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 앞에, 소나, 양이냐, 비둘기 파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돈 바꾸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이 돈 바꾸는 사람들은, 환전상이었습니다. 외국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의 화폐로 바꾸어 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세겔' 이나 '렙돈' 만 성전에서 받았거든요.

그러니까, 헌금을 드리기 위해서는, 환전을 해야만 했습니다.

 

외국 돈으로 헌금하면, 그 돈을 제사장들이 모아서, 나중에 한 꺼번에, 환전하면 되는데, 굳이, 이스라엘 돈으로, 헌금을 드리라고 한 것은, 아마도, 환전상과, 제사장들간에, 거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 명절이 다 끝나면, 환전상들이나, 소나, 양이나, 비둘기 파는 사람들은, 그들의 수익금의 얼마를, 제사장들에게 상납했을 거예요.

 

뒤에서는 제사장들이 봐주고, 앞에서는, 돈을 벌고…… 이렇게 되면, 사회가 얼마나 썩은 것입니까?

 

역사적으로, 사회가 타락할 때, 제일 마지막 단계는, 종교의 타락이라고 합니다. 이 종교는 보통 카톨릭과 기독교를 말합니다. 정직을 말해야 하고, 거룩을 외쳐야 하고, 순결을 유지해야 하는, 교회가 타락하기 시작하면, 그 사회는 끝이라고 봐야 합니다.

 

당시에 이렇게, 제사장들이 부패하고,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은, 저 뒷전으로 미루고, 제사를 빌미로, 순수한 성도들에게서 돈을 가로채고 있으니, 예수님께서, 들러 엎으실 만 하시지요.

예수님께서는 세번의 유월절 중에, 두번 올라 가셨는데, 두번 다 '들러 엎으시러 가셨어요'

 

요즘 우리가 새벽기도 시간에, 사울의 예배가 잘 못된 예배였다는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크게 진노하시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의 유월절 제사는, 내용은 하나도 없고, 형식만 남아 있는 제사였습니다.

제사장들은, 이 명절에 한 목 단단히 챙기려는 마음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무슨 예배를 제대로 드리겠습니까? 성도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정성이 하나 없었습니다. 유월절 제사에, 준비하는 것 없이, 제물만 드리면 다라는 그런 생각으로, 주머니에, 돈만 가지고 떠났습니다.

 

성전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져야 하고, 그 하나님께, 그 동안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고, 감사와 기쁨으로 예배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야 하는데, 성전에 도착하니까, 소의 울음소리, 양의 소리, 비둘기 소리, 돈 바꾸는 소리, 정신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어렵게 줄을 서서, 양 한 마리를 사긴 샀는데, 이 양을 보면서, 나의 죄를 대신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는 생각도 하기 전에, 레위인들이 끌어다가, 목을 따고, 번제로 태워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유월절 제사를 드렸다고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그들의 마음은 어떠 했겠습니까?

 

'이건 아니다. 이건 정말 아니다. ……… 뭔가 예배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 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때 등장하신 분이 예수님이예요. 다 들러 엎으신 것입니다. 제가 좀, 과격한 단어를 택하였는데, 요즘 말로 하면, '예배의 개혁' 을 하신 것입니다. 정말 예배가 무엇이지 가르쳐 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제물만 드리면, 그것이 예배의 전부인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죽어라,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어떻게든지, 제물만 드리기만 하면 됐습니다.

 

지금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어떻습니까? 혹시, 2000년 전의, 그 예배와 비슷하지는 않는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어느 주일날, 어느 가족이 바쁜 걸음으로 교회를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교회에 가까이 왔을 때,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있던, 아이가 엄마 아빠에게 이렇게 말 합니다. '엄마, 아빠 오늘은 절대 졸면 안돼!' 라고요.

그렇게 아이가 부탁을 했는데도, 그날도, 여지 없이, 설교의 시작과 동시에 엄마, 아빠는 졸기 시작했습니다.

하도 졸리니까, 이 부부는 몸을 좌우로 약간씩 흔들어 봅니다. 그래도 졸리니까, 주보가 무슨 죄가 있는지, 주보를 샅샅이 훑어 봅니다. 주보를 다 읽었는데도 졸리니까, 설교를 쓰는 척 하면서, 이번엔 펜을 잡고는, 고개를 숙이고 잠을 잡니다.

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아이가, 엄빠 아빠가 너무 재미 없어 하는 지 알고, 엄마, 아빠! 그렇게 재미 없으면, 우리 빨리 요금이나 내고, 집에 가자! 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헌금이, 요금이 되어, 이 요금을 내러 오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형식적인 예배의 단면을 보여주는 이야기 입니다. 당시의 예배가 이런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제물만 드리면, 예배인 것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청결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무엇을 하셨냐면,

  1. 두번째로, 성전의 의미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엎으시니까, 18절에, 유태인들이, 뭐라고 말하냐면,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라고 묻습니다.

영어 성경이 좀더 자세히 번역해 놓았는데,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네가 무슨 권위로 이렇게 하였느냐, 그 권위를 증명해 보라' 고 말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너는 이제 큰일 났다, 하나님의 성전을 들러 엎었으니, 너는 하나님을 화나게 만들었다, 너에게 화가 미칠 것이다' 이런 말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뭐라 말씀합니까?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 이 성전은 46년 동안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 무슨 수로 일으키겠느냐?" 말하죠.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성전을 들러 엎으시기도 하시고, 다시 성전을 세우기도 하실 수 있는 분임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나는 성전을 헐 수도 있고, 성전을 다시 지을 수도 있다.

 

그런데 성전이 어떤 성전입니까? 오늘 본문 21절을 보시면, "자기 육체" …………..

예수님의 몸이 성전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을 수도 있고, 삼일 만에 다시 부활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때, 이 성전의 의미가 바뀐 것입니다.

 

그전에는, 소나 양을 끌고,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 갔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성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주님 앞에 나오면서, 진실한 내용 없이, 외형과 꾸밈만 가지고 나온다면, 우리의 예배는 2000년 뒤로 후퇴하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지금 우리의 예배가, 형식에 치우쳤다면, 주님처럼, 그런 것들은, 다 들러 엎어 버리셔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로, 재 건축해야 합니다.

 

이렇게 예배 드릴 때, 거기에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그렇게 예배 드릴 때, 그 곳에서, 하나님은, 부흥을 허락하십니다.

 

우리는 그런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모입니다. 우리 꿈의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예배가 회복되는 꿈을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